리스킬링, 변화에 대한 조직-구성원의 합동 전략

"저기…이제 다른 일을 맡아주면 좋겠어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이런 요청을 언제쯤 듣게 될까요? 불과 반년 전 정도만 해도 한국어 텍스트를 다루는 AI의 능력이 아직 두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얼마 전 다시 활용해보니 그새 체감이 될 정도로 발전한 결과물을 내놓는 것을 보고 이런 요청이 지식 콘텐츠를 작성하는 나에게도 근미래에 올 수 있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덜컥 들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평생 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누구라도 해봤을 법하지만, 내 의지가 아닌 변화를 커리어 동안 여러 차례 마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막막해지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이 막막함은 일하는 개인만의 사정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조직의 필요에 의해 뽑았고, 그에 따라 자기 일을 잘 하고 있던 구성원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 의해 그 쓸모를 잃어간다면 이는 조직으로서도 당혹스러운 상황이지요. 그렇다고 당장 필요한 새로운 스킬을 지닌 사람들로 자리를 바꾸어 채우는 일도 녹록지 않고요. 미국에서는 대규모 해고-채용으로 조직의 스킬셋을 바꾸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한국의 근로기준법상 일어나기 어려운 일입니다. 또 만약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구성원은 기계가 아닌 만큼 스킬이 적합한 것만으로 성공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조직의 문화와 업무 체계, 동료들과의 호흡 등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기존에 자기 몫을 잘 해내던 구성원을 스킬만을 기준 삼아 내치고 취하는 일은 어디에 있는 어느 조직에든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구성원의 직무를 바꾸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아예 새로운 스킬을 학습해 인력을 효율화하는 리스킬링(reskilling)은 기업과 구성원 모두에게 당장 직면한 화두입니다. 거대한 기술 진보와 비즈니스의 변화에 함께 대응할 수 있는 공동의 무기로서 말이지요. 오늘 Lemonbase Camp Weekly(LbC Weekly)에서는 리스킬링을 당면과제로 인식하고 행동에 나서려는 조직과 구성원이 실행을 앞두고 함께 맞추어나가야 할 요소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리스킬링, 얼마나 가까이 와 있을까?
자기가 원래 하고 있던 일을 떠나 아예 새로운 직무로 전환하는 일은 '연공서열이 적용되는 평생 직장'으로 대변되는 이전 세대 고용 환경에서는 일생에 한번 있을 만한 매우 큰 이벤트였습니다. 하지만 여러 연구와 조사에 따른 전문가들의 미래 예측에 의하면, 앞으로는 커리어 내내 수차례의 직무 전환을 겪는 사람의 숫자가 오히려 다수를 차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보입니다.
이렇게 예측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비즈니스에 활용되는 스킬에 큰 변동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킬이 가지는 수명의 평균 반감기가 5년 미만으로 줄었으며, 일부 기술 분야에서는 2.5년까지 떨어졌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링크) 세계경제포럼은 <미래 일자리 보고서 2025>를 통해 현재 업무에서 필요한 스킬의 약 40%가 2030년이 되면 아예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하며, 그에 따라 2030년까지 노동시장 구조 변화로 인해 현재 전체 일자리의 22%에 달하는 숫자만큼 이전에 없던 일자리가 생기거나(14%), 반대로 아예 없어질 것(8%)으로 예상합니다.(링크) OECD 역시 같은 방향의 예측을 내놓으며, 2030년까지 변화할 전세계 일자리의 수를 11억개로 추산합니다.(링크)
이는 기술과 비즈니스의 변화가 조직에 이러한 일자리 변화의 흐름을 강제하며, 기업들이 이에 대응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미래 일자리 보고서 2025> 조사 설문에 참여한 고용주의 63%가 2025~2030년 사이 일어날 비즈니스 혁신의 가장 큰 장애물로 '스킬 격차'를 꼽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구성원의 스킬 향상을 우선시할 계획이라고 밝힌 응답이 85%에 이릅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의 조사에 의하면, 이미 2023년에 포춘 50대 기업의 34%가 리스킬링과 업스킬링을 최우선 전략과제로 삼고 연간 예산의 1.5% 가량을 이를 위한 예산으로 책정했습니다.(링크)
기업이 새로운 흐름에 발맞춰 조직의 스킬셋을 재정비하고 성과와 효율의 증대를 도모하는 이때, 실제 스킬을 보유하고 활용하는 구성원들이 리스킬링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이는 조직과 구성원이 윈-윈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조직이 리스킬링에 투자할 경우 현재 속한 조직에 계속 근무하겠다고 응답한 구성원의 비율이 65%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링크)도 있는 만큼, 리스킬링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지금의 상황을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직과 구성원이 함께 하는 리스킬링
🔗 조직의 필요와 구성원의 동기 얼라인하기
변화에 발맞춰 조직의 경쟁력을 높이고 성과를 올리기 위한 방안으로써 조직이 리스킬링을 검토하더라도, 구성원이 움직이지 않으면 리스킬링은 수행될 수 없습니다. 독일 헤드헌팅 플랫폼사 Hays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리스킬링을 중요한 이슈로 인식하는 비율이 구성원(36%)의 경우 경영진(47%), HR 담당자(46%)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링크) 이는 막연하게 위기감이나 불안감을 느끼더라도, 막상 이를 '나의 일'로 느끼는 데는 이르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해소하는 데 힌트가 될 만한 실험이 있습니다.
글로벌 무선통신사 보다폰(Vodafone)은 회사가 마련한 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메시지를 여러 방향으로 마련해, 이를 대상 구성원들에게 무작위로 발송했습니다. 메시지는 리스킬링이 ▲개인적인 발전의 기회가 될 것 ▲회사의 전략에 기여하는 일이 될 것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을 경험하게 될 것 ▲디지털 전환의 미래와 커리어가 연결되는 기회가 될 것의 네 가지였는데, 이때 네 번째 메시지가 리스킬링에 대한 태도에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른 메시지에 대비해 이후의 커리어 선택에 대해 평균 4.7% 더 개방적이고, 리스킬링을 고려할 가능성도 평균 4.9% 높았습니다. 이 메시지를 받은 구성원이 사내 웹페이지에서 리스킬링 기회에 대해 평균 14.7% 더 많이 찾아보기도 했고요. 교육을 다르게 하거나 비용을 추가로 들이지 않고, 단지 같은 내용에 대해 다른 메시지를 활용한 것만으로 더 높은 효과를 보인 것에 대해 담당자는 '리스킬링에 대한 공개적이고 솔직한 메시지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습니다.(링크)
리스킬링의 결과로서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스킬과 직무란 조직의 현황과 지향을 비교해 부족한 스킬을 파악한 뒤 그에 맞춰 마련되는, 즉 조직의 필요가 선행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군다나 이전에 하지 않았던 새로운 직무로의 전환을 염두에 두는 리스킬링에 선뜻 나서기에는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나에게 도움이 될까' 등 구성원의 불안감이 높은 것은 일견 당연합니다. 이때 새로운 스킬과 직무가 장기적인 변화 흐름 속에서 어떻게 커리어와 연결되는지를 일러주며 설득하는 메시지가 구성원의 인식에 효과를 보였다는 결과는 그래서 의미가 큽니다. 결국 리스킬링도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구성원에게 리스킬링이 가져다줄 수 있는 이익을 찾아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구성원의 동기를 이끌어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구성원의 68%가 미래 커리어의 성공을 위해 리스킬링에 응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BCG의 조사 결과는 이러한 동기를 뒷받침합니다.(링크)
🧑🏻🏫 실무와 통합된 교육 프로그램 수행하기
새로운 스킬을 배우는 일은 리스킬링 전체 과정에서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업스킬링과 방식은 유사할 수 있지만, 리스킬링을 위해서는 그보다 더욱 체계적이고 집중도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링크)
우선 사내 교육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스킬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사례들을 여럿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마존은 사내 '머신러닝 대학교(Machine Learning University)'를 설치, 머신러닝 경험이 없는 여러 직무의 구성원 수천여명을 머신러닝 전문가로 육성하고(링크), 이들로 구성된 실무자 커뮤니티를 통해 전문성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또 캐논은 사내 소프트웨어 기술자 육성 조직(CIST)을 운영해 비개발 직무 구성원을 대상으로 리스킬링 연수를 제공한 후 개발 직무로 재배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링크)
외부 교육기관과 연계된 학습 및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개발자 전환 부트캠프, 데이터 분석 전문가 육성 프로그램 등으로 이름 붙은 것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특히 현재 조직에서 새롭게 보유하려 하는 특정 스킬의 경우, 이에 대한 교육 역량이 사내에 오롯이 마련되어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교육을 전문적으로 개발하고 연구해온 기관이나 업체와 연계해 프로그램을 마련하려는 시도를 다수 목격할 수 있습니다.
업무 프로젝트와 연계해 실무 과정에서 리스킬링을 수행할 수도 있습니다. 현대모비스의 경우 '사내 데이터분석 전문가 양성 프로젝트'를 통해 참여자들이 현업과 유리된 채 교육만을 받고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실제 업무와 병행하는 학습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참여자들은 머신러닝과 데이터 전처리, 모델링 전반에 대한 사전 교육을 받고, 산학 협력 프로젝트를 통해 현업과 연결된 실제 과제를 수행한 뒤 사후 역량 테스트를 거쳐 성취도를 종합적으로 측정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링크) 맥킨지의 조사에서 리스킬링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 가장 어려운 지점이 '프로그램의 목적과 당면한 사업 운영의 요구를 균형 있게 맞추는 것'(링크)이라고 나타난 데 대해 이러한 시도가 해답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나타나는 두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선 리스킬링 교육은 어느 특정 부분에 대한 보충 학습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커리큘럼을 두고 스킬 활용 전반에 대한 통합적인 교육을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교육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무와의 연결을 고려한 학습 과정을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모두 리스킬링이 결국 직무 전환을 염두에 둔 움직임이라는 데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 새로운 스킬이 잘 활용되는 문화 만들기
리스킬링은 조직이 부족한 스킬을 확보하는 여러 방안들 중에서도 효율이 높은 방법으로 꼽힙니다.(링크) 당장 없거나 부족하던 스킬이 조직 안에 새롭게 확보되는 것인데다, 그 스킬을 가진 이가 조직에 대한 적응이 필요 없는 기존 구성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구성원이 새로운 스킬을 장착하고 다른 직무를 맡은 것만으로 정말 우리 조직 전체의 스킬 수준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보스턴칼리지 캐럴경영대학원의 샘 랜스보텀 교수는 리스킬링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조직의 '스킬 소화력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링크) 조직 내 스킬 개선은 조직 전체에 고르게 분포되지 않으며, 구성원 간 스킬 수준의 향상 속도가 다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스킬을 가진 구성원들이 이를 활용해 솔루션이나 산출물을 생산하더라도 여타 조직 구성원이 그 결과의 의미나 무엇을 이전과 다르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상태라면 새로운 산출물의 효과를 조직이 온전히 경험하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단적인 예로, 특정 구성원들이 리스킬링을 통해 AI 활용 능력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조직 전반에 AI를 막연히 불신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거나 AI를 활용한 업무 효율화 등에 조직이 소극적으로 반응한다면 해당 리스킬링의 효과가 온전히 나타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일본 아오조라은행이 'DX 인재/스탠다드 코스' 연수를 통해 사장 포함 2,000여명 전직원 대상의 디지털 전환 리스킬링 교육을 수행한 사례는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시도로서 참고할 만합니다. 교육책임자는 "현장의 주체성을 높이는 데 있어 전직원이 디지털에 대해 숙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링크)
리스킬링에 저항하는 일부 리더들의 인식을 바꿀 필요도 지적됩니다. 이러한 중간관리자들은 팀원들이 리스킬링을 수행하는 동안 기존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과, 리스킬링 결과 팀원이 타 부서로 이동하는 상황을 걱정합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리스킬링 프로그램의 설계와 운영에 중간관리자를 참여시키고, 리스킬링에 대한 인식 재교육(이 역시 '소프트스킬에 대한 업스킬링'이기도 합니다)을 시행할 수 있습니다.(링크)
직무 전환의 기회를 유연하고 넓게 확보해 스킬 최적화를 꾀하는 것도 조직 내 새로운 스킬이 잘 활용되는 문화를 구축하고 리스킬링의 효과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맥도날드는 사내 앱('Archways to Opportunity')을 통해 직무에서 습득한 기술을 회사 내 및 다른 산업 분야의 커리어패스와 연결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했습니다.(링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