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6억 성과급' 이면에 숨겨진 HR의 진짜 고민

최근 직장인들의 단톡방과 블라인드를 뜨겁게 달군 소식이 하나 있죠. 바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DS: Device Solution)의 '6억 성과급' 뉴스입니다. 파격적인 숫자에 부러움 섞인 시선이 쏟아졌지만, HR 담당자들의 관점에서는 이 뉴스를 조금 다르게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소식의 핵심은 6억원이라는 숫자가 '확정된 지급액'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회사가 목표대로 실적을 달성한다면, 이만큼의 보상이 가능하다’는 기대수익을 약속한 것에 가깝습니다. 연말 영업이익 실적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사전에 구성원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그 목표를 향해 뛰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부여 장치’로 작용한다는 것이죠.
다만 이 장치가 ‘부러움’을 넘어 ‘실제로 뛰게 만드는 힘’으로 작동하려면, 성과급의 크기(분배적 공정성)뿐 아니라 그 차이가 만들어지고 설명되는 과정(절차적 공정성)까지 함께 설계되어야 합니다.

왜 ‘돈을 많이 주는 것’으로 문제가 끝나지 않을까: 외부적 경쟁력 vs 내부적 형평성
몇 해 전 서울대 신재용 교수의 저서 ≪공정한 보상≫은 국내 HR 업계에서 큰 화두를 던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보상을 설계할 수 있을까?’ 많은 기업이 이 질문을 두고 치열하게 고민했죠.
사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HR은 오랜 시간 두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보상 체계를 설계해 왔습니다. 글로벌 보상 분야의 대표 도서로 불리우는 ≪Compensation(Milkovich)≫에서도 보상 전략의 핵심 축으로 제시하는 개념이 바로 외부적 경쟁력(External Competitiveness)과 내부적 형평성(Internal Equity)입니다.
- 외부적 경쟁력: ‘우리 회사가 업계 경쟁사보다 돈을 더 많이 주느냐’에 관한 문제입니다. 노동경제학의 시장임금 개념에 기반하며, 객관적인 시장 보상 데이터를 활용해 보상 수준을 결정합니다. 우수 인재를 유치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장 대비 경쟁력 있는 보상 수준을 설정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 내부적 형평성: ‘나와 비슷한 연차의 옆 팀 동료, 혹은 다른 사업부의 선임과 비교했을 때 내 보상이 공정한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스테이시 아담스의 공정성 이론(Equity Theory)에 기반하며 구성원 개인이 투입한 노력·성과 대비 유사한 연차·직무의 타인과 비교했을 때 보상이 합리적인지, 혹은 직무 가치가 보상에 적절히 반영되어 있는지, 즉 '분배적 공정성'이 지켜지는지를 다룹니다.
내부적 형평성과 '분배적 공정성'의 딜레마: 삼성 사례
우리는 흔히 '외부적 경쟁력(압도적인 보상)'만 충족되면 구성원들의 불만이 사그라들 것이라 착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보상 규모 못지않게 구성원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바로 '분배적 공정성'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막대한 보상 규모를 자랑하는 대기업 내부의 '사업부 간 성과급 갈등'입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 성과급 협상 과정에서 사업부 간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며 진통을 겪었습니다. 반도체(DS) 부문과 스마트폰·가전(DX: Device eXperience) 부문 간 예상되는 성과급의 차이가 수십 배 이상 예상됨에 따라, “같은 회사에서 똑같이 치열하게 일했는데, 단지 소속 부서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성과급이 이렇게까지 차이 나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라는 구성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성과급 개편안 찬반투표 과정에서 드러난 양 부문 노조 간 갈등 역시, 그 기저에는 '성과급 산정 방식의 투명성과 형평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보상 규모의 차이가 각 사업부의 실적과 성과 때문이라는 점을 머리로는 이해하더라도, '같은 울타리 안에서의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감정적인 불편함을 지워내기 어려운 것이죠.
투명한 '룰'의 도입, 그러나 완벽한 분배는 불가능?
이러한 분배의 차이에서 오는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기업들이 우선적으로 신경 쓰는 것은 '투명한 룰'의 세팅입니다. 2021년 SK하이닉스가 복잡한 EVA(경제적 부가가치) 산식을 폐지하고 영업이익 연동 방식을 도입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서두에서 다루었던 삼성전자 역시 최근 노사 합의를 통해, 기존 성과급(OPI) 외 '사업 성과의 10.5%'라는 투명한 산식의 특별경영성과급을 새롭게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투명한 룰을 도입한다고 해서 모든 구성원이 분배적 공정성을 체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과급을 설계하고 분배하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은 다음과 같은 심리적, 구조적 이유로 결과를 '완벽하게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 사람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에 더 민감합니다 (손실 회피와 보유 효과):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사람은 동일한 금액을 얻을 때의 만족감보다 잃을 때 약 두 배 더 큰 상실감을 느낍니다. 때문에 구성원들은 합리적인 제도 개편조차 심리적으로는 '손해'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과거에 받았던 최고 수준의 성과급을 자신의 기준선(준거점)으로 설정하고, 이를 이미 '확보된 나의 자산(보유 효과)'으로 인식합니다. 객관적인 불이익이 아니더라도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당연히 받아야 할 보상의 삭감'으로 체감하게 됩니다.
- 모두를 만족시키는 '차등 보상'은 없습니다 (제로섬의 역풍): 성과주의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재원의 추가 없이 차등 보상만을 강화하면, 이익을 보는 그룹과 손해를 보는 그룹이 나뉠 수 있습니다. 특히 성과급은 회사 실적에 따라 전체 재원 규모 자체가 유동적으로 변하여 개인의 몫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제로섬(Zero-Sum) 현상이 더욱 심화됩니다. 한정된 파이 안에서 혜택을 본 이들은 조용히 수용하지만, 보상이 줄어든 이들은 제도의 불공정성을 제기하며 불만을 주도하게 됩니다.
- 보상 정보는 완전히 공개하기 어렵습니다 (정보 비대칭성에 따른 오해): HR이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제도를 설계하고 투명하게 소통하더라도, 개인 보상 정보는 공유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구성원들은 제도 개편의 결과가 결국 '인건비 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을 느끼기 쉽습니다.
HR의 돌파구는 '절차적 공정성': 제도 설계와 운영
위와 같은 심리적 편향들로 인해 완벽한 분배적 공정성을 달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유불리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HR은 ‘결과(분배)’만으로 설득하기보다, 그 결과가 도출되는 과정, 즉 '절차적 공정성(Procedural Justice)'을 단단하게 구축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절차적 공정성은 일반적으로 '제도 설계'와 '제도 운영'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 설계의 관점: 제도가 사전에 합의된 원칙대로 투명하게 세팅되었는가를 의미합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전사 보상 재원 산식의 블랙박스를 없애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때 주의할 점은 보상 개편 초기에 달성하고자 했던 본연의 목적(예: 핵심 인재에 대한 보상 강화를 통한 리텐션 제고 등)을 잃지 않으면서도, 구성원 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절차적 공정성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 운영의 관점: 전사 차원의 이익 배분 로직이 아무리 명확하게 설계되어도, 절차적 공정성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 확정된 파이를 구성원 '개인'에게 나누어주는 운영 과정이 여전히 블랙박스라면 최종 결과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보상 제도가 구성원들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려면, 그 보상의 근거로 활용되는 '평가 제도' 자체가 본래 목적한 대로 타당하게 작동해야 합니다. 보상과 평가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유기적인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개인 평가의 ‘블랙박스’를 줄이는 방법: 연말 정산이 아닌 ‘연중 기록’
결국 절차적 공정성(운영)의 핵심은 투명하고 납득할 수 있는 '개인 평가'입니다. 그리고 그 평가를 신뢰하게 만드는 실행 장치가, 연초의 약속(목표)부터 연말 평가까지의 과정이 남는 '연중 기록'입니다. 개인 보상에 대한 수용성을 끌어올리려면, 연초에 맺은 약속(목표)이 연말 평가 때까지 어떻게 이행되었는지 리더의 '기억'에만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정교한 성과급 산식을 만들어도 평가 과정이 주먹구구라면 불신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1:1 미팅, 주기적 체크인, 상시 피드백 등 1년 내내 차곡차곡 쌓인 '성과 기록'이 있다면 어떨까요? 리더는 흔들림 없이 성과를 설명할 수 있고, 구성원은 평가 결과를 기꺼이 수용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수많은 기업의 성과관리 여정을 함께해 온 레몬베이스가 현장에서 확인해 온 바에 따르면, 구성원들이 평가를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핵심 원인 중 하나는 ‘1월의 성과가 12월 평가 때 잊혀진다’는 최근 편향(Recency Bias)에 있습니다. 반면 평가의 수용성이 높은 조직일수록 '과정에서의 충분한 의사소통(수시 피드백, 1:1 미팅 등)'이 활발하게 일어납니다. 연 1회 몰아서 하는 평가보다, 상시로 성과를 점검하고 기록할 때 보상의 수용성 역시 높아진다는 사실이 여러 고객사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됩니다.
구성원이 성과급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힘은 완벽한 엑셀 수식에서만 나오지 않습니다. 투명한 원칙과 끊임없는 소통, 그리고 그 과정에 믿음을 부여해 줄 수 있는 기록에 근거한 '성과관리 체계'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올해 우리 조직의 성과급 제도를 연말 ‘정산'의 관점에서만 고민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혹시 지금 구성원의 성장을 다독이는 '동기부여의 여정 설계'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공정한 보상 기준을 세우는 일부터 꾸준한 성과 기록까지, 그 모든 여정을 레몬베이스가 함께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