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다고 왜 말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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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에 대한 의욕이 생기지 않고, 흥미도 느끼지 못하고 있어요. 퇴근 시간만 기다리면서 하루를 보내곤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제 상태를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에요. 제가 지금 번아웃을 겪고 있는 건가요?

아뇨, 이는 보어아웃 신드롬(Boreout syndrome)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주로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보어아웃, ‘번아웃’에 비해 생소한 개념일 수 있는데요. 번아웃과 보어아웃은 업무량과 능력 사이의 불균형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번아웃은 업무량이 구성원의 능력을 넘어서기 때문에, 보어아웃은 반대로 업무량이 능력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에 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보어아웃, 번아웃과 어떻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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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Lemonbase Camp Weekly 29회Forbes 아티클, 심리학자 Steve Savels의 정의 재구성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서 본인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혼동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번아웃으로 위장하여 그들에게 새로 주어지는 업무를 피하려 하기도 합니다. 보어아웃 증후군에 빠진 구성원이 많아지면, 조직 입장에서는 성과 창출이 더디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많은 구성원이 이직을 선택하거나 ‘Quiet Quitting(조용한 그만두기)’과 같이 몰입이 깨진 상태로 방치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지요.

보어아웃과 번아웃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악순환 구조에 빠질 위험도 있습니다. 업무 분담의 문제로 인해 팀의 누군가는 과중한 업무로 인해 번아웃에 빠졌을 때, 겉으로만 분주한 척 하며 보어아웃에 빠진 누군가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심리학자 피터 스튜어트는 포브스를 통해 보어아웃을 번아웃과 구분할 수 있는 네 가지 질문을 제시했습니다. 번아웃이 아니라 보어아웃에 빠진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 하루를 채울 만큼의 일거리를 찾기가 어렵나요?
✅ 무엇을 배우는 데 관심이 있나요?
✅ 궁극적인 커리어 목표는 무엇인가요?
✅ 업무 외에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나도 보어아웃에 빠진 걸까?

‘보어아웃’은 2008년 출간된 스위스 비즈니스 컨설턴트 필리페 로틀린, 페티 베르더의 저서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입니다. 저자들은 ‘지루함, 의욕상실, 무관심’을 보어아웃의 3요소로 꼽습니다. 이에 따라 ‘지루함이 지속되면서 의욕과 관심이 사라진 상태’라고 보어아웃을 정의합니다.

지루함

직장에서 모든 일을 진행하는 동안 유난히 시간이 길게 느껴지고, 허무한 감정이 뒤따르는 상태를 말합니다. 흥미가 생기지 않는 상태, 활력이 부족하여 적극적인 자세와 내면적 동기가 부재할 때의 무기력증이 특징입니다.

의욕상실

자신의 능력 이하의 업무를 부여 받을 때, 즉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것보다 더 많은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무료함과 함께 의욕상실을 느끼곤 합니다.

무관심

직장이나 업무가 어떻게 되든지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느끼는 감정을 말합니다. 직장에서 자신이 하는 행동에 의미를 두지 않으며, 자신이 맡은 업무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관심이 떨어지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증상을 가끔, 조금씩 겪는 모든 사람이 보어아웃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업무에 있어 가끔 지루함을 느끼거나 의욕과 관심이 떨어지는 때가 당연히 있을 수 있지요. 하지만 일시적으로 지루함을 느끼는 것을 넘어 ‘퇴근시간은 왜 이리 안 오는거야?’(지루함), ‘왜 나는 단순 반복 업무만 해야 하지?’(의욕상실), ‘도대체 난 누구를 위해 일하는 건가?’(무관심)라는 생각이 상당 기간 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면, 이를 가볍게 지나가는 감정으로 치부하고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보어아웃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

‘게으르다’는 낙인이 찍힐까 두렵다

보어아웃은 그 당사자가 ‘사명감과 성취욕이 없는 사람 또는 게으른 사람’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증후군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쉬워서 도전적이지 않은 일, 단조롭고 획일적인 일 등 개인에게 충분한 자극이 주어지지 않는 일을 맡게 되는 경우에 보어아웃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엔 심리적인 보상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지요.

프랑스 EM 리옹 경영대학원의 로타 하르주 교수는 BBC와 인터뷰에서 “(보어아웃에 빠진) 사람들은 사무실 책상에 앉아 온라인 쇼핑이나 게임, 동료와의 채팅, 업무 외의 다른 일에 대한 계획 등으로 시간을 보내곤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러한 행동은 "(보어아웃에 대한) 대응 메커니즘"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즉, 게으름은 보어아웃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에 더 가깝다는 점을 짚고 있는 것이지요. 지루한 업무를 달래주는 대체물(웹서핑 등)이 넘치는 환경이 보어아웃에서 벗어나는 것을 더 힘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보어아웃 패러독스’에 갇힐 수 있다

‘보어아웃 패러독스’가 보어아웃 상태를 유지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자신이 보어아웃 상태에 있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더 과중한 업무를 맡기 싫어하는 등의 심리에 갇혀 그 상태에서 벗어날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지요.

하르주 교수는 여러 연구에서 보어아웃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2014년 핀란드 회사 87곳의 노동자 1만1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만성적인 무력감이 직원들의 이직과 조기 퇴직 의향은 물론, 건강을 악화시키고 스트레스 반응을 증가시켰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2016년 연구에서는 ‘보어아웃을 경험한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직장에서 새롭고 흥미로운 도전을 찾는 등의 건설적 시도 가능성이 낮다’고 밝혔습니다.

개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울 수 있다

보어아웃에 대한 연구가 거듭되면서, 이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선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일부 구성원이 흥미 있는 일을 독점하는 등 협업 관계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누군가는 보어아웃에 시달리고 있을 수 있고, 구성원이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도 개인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어아웃은 그 자체로 업무 환경에서 금기시되는 태도이기 때문에, 번아웃에 비해 조직과 리더에게 알려서 도움을 구하는 경우가 적을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지요. 이렇게 수면 아래에 놓인 보어아웃은 직장 밖 삶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퇴근하고나서도 느끼는 피로감, 에너지를 요하는 관계를 회피하는 모습, 의욕적이지 않은 자유시간 등이 예시입니다. 2020년 터키 공무원 186명을 대상으로 한 메르신 대학 파흐리 외젠그루 교수의 연구에서는 보어아웃에 시달린 이들에게서 우울증과 스트레스와 불안 수치가 높게 나타났습니다. 심지어 보어아웃으로 우울증이 생긴 노동자들은 퇴근 후에도 두통과 불면증 같은 질환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았지요.

보어아웃에서 벗어나기

보어아웃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 문제가 심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문제를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지루하다’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보어아웃을 겪고 있는 개인은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는 것을 꺼리고 심지어 번아웃으로 가장하기까지 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에게 스스로를 치유하도록 방치할 경우 문제 해결이 요원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보어아웃'을 드러낼 수 있는 심리적 안전감을 조성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입니다.(링크)

자신의 능력에 비해 업무량이 적다거나, 도전적인 업무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도록 리더가 구성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리더는 구성원과 ‘보어아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동안 발견하지 못한 구성원의 강점이나 관심사를 스스로 꺼내어 보일 수 있도록 장려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해당 구성원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이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을 발굴하는 결실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보어아웃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일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회사와 팀의 목표 달성과 연관된 관심사를 회사 안팎으로 탐색해보는 것을 적극 권장하는 것도 좋습니다. 아울러 단조로운 반복 업무가 일부 구성원들에게 몰려 있는 것은 아닌지, 업무 분담에 문제가 없는지도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지루한 일을 처리하는 ‘흐름’을 만든다

‘지루함’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해볼 수 있습니다. 퇴근 직전 등 하루 중 에너지가 가장 떨어지는 시간에 반복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등 효율적인 업무 방식을 개인적으로 찾아갈 수도 있습니다.

보고서를 읽거나 회의에 참석하는 등 수동적인 활동 중에 느끼는 지루함을 창의력이 요구되는 업무에 몰입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일상에 적용해보아도 좋겠습니다.(링크)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할 때는 이메일 회신, 복사, 데이터 입력과 같은 단조로운 작업부터 시작한다든지, 주로 청자의 입장에서 참석한 회의를 마친 뒤에는 문제를 면밀히 검토하여 솔루션을 도출해야 하는 일에 착수하는 것이 효과적인 업무 흐름일 수 있다고 조직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커스는 조언합니다.

혁신적인 프로젝트에 시간을 할애한다

구글의 ‘20% 룰'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개러지’와 같이 혁신적인 프로젝트에 자율적으로 시간을 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보어아웃'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구글의 ‘20% 룰'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업무 시간의 20%를 구성원 스스로가 생각했을 때 회사에 가장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프로젝트에 쓰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2009년 문을 연 마이크로소프트의 개러지는 구성원들이 아이디어를 함께 나누고 실험을 통해 제품을 만들어 평가까지 받을 수 있는 ‘혁신 공간’입니다. 주 업무가 아닌 개인이나 소규모 그룹의 관심사에 따라 ‘사이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함께 일할 팀원을 공개 모집할 수도 있다고 하고요. 시공간적 ‘여유’를 통해 시야를 넓히고,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영감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지요.

일의 의미를 찾는다

마지막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조하는 것으로 글을 맺겠습니다. 보어아웃은 만성적인 지루함으로 인해 업무에 부여하는 의미와 관심이 사라진 상태이기 때문에, 일의 의미를 스스로 되찾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리더는 구성원들의 일상 업무가 더 큰 의미, 영향, 가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정기적으로 짚어주어야 합니다. 1:1 미팅에서 ‘보어아웃’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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