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쓸수록 더 지치는 이유

AI가 생산성을 높여 업무량이 줄어들 것이란 기대와 달리, 도리어 높아진 업무 강도에 지쳐가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합니다. 저도 예외는 아닌데요. 간단한 예로, 소셜미디어 포스팅 과정을 전과 비교해보겠습니다. 물론 초안을 작성하는 시간은 획기적으로 줄었지요. 하지만 여러 개의 초안을 비교·검토하고 프롬프트를 수정하며 대안을 요청하고 다듬는 과정은 ‘결정’의 연속입니다. 직접 쓰는 대신 검토하고 비교하고 선택하는 ‘감독’이 되는 셈입니다.
코딩도 다르지 않지요. 실시간으로 AI가 제안한 코드를 검토하고 반영할지 말지 선택하고, 프롬프트를 다시 작성할지, 결과물을 새로 만들지 등을 수없이 결정해야 합니다. 자잘한 결정들이 쉴 틈 없이 반복됩니다. 그러는 와중에 새로운 AI 툴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사용법을 익히는 것도 업무를 과중시킵니다. 실제 업무보다 도구 관리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되기도 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감독’ 노릇이 정신적 에너지를 크게 소모한다는 점입니다. 과도한 정보 습득, 빈번한 작업 전환으로 인해 머리가 멍해지거나 두통을 느끼는 ‘AI brain fry(AI 뇌 과부하)’를 호소하게 되는 이유입니다.(링크) 이번 레터에서는 AI로 인해 뇌에 과부하가 걸리는 이유와, 이러한 현상을 조직적으로 감지하고 예방하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쉴 틈 없는 결정의 끝은 두통?
실제로 AI를 사용하면 더 오래, 많이 일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비영리 AI 연구기관인 METR이 숙련된 개발자 16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개발자들이 AI 도구를 사용할 때 버그 수정, 기능 추가, 리팩토링 등 작업 완료에 걸리는 시간이 19%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AI 덕분에 작업 속도가 24% 향상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상반된 결과입니다.(링크)
UC 버클리 하스경영대학원 연구진이 200여명 규모의 테크 기업을 8개월간 관찰하며 AI 사용이 업무 습관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 결과, AI가 업무 속도를 높이더라도 그 시간을 휴식에 쓰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업무를 맡으면서 더 긴 시간 동안 일하는 것으로 관찰되었습니다.(링크) 원인은 다양합니다. 기획자, 디자이너가 ‘바이브 코딩’으로 직접 개발에 나서는 등 업무 범위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개발자들은 공식적인 코드 리뷰 외 비개발자 동료들이 AI로 생성하거나 AI의 도움을 받아 만든 결과물을 검토, 수정, 지도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고요. 업무 시간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지는 경향도 강합니다. AI 덕분에 작업의 시작이 명백히 쉬워졌지요. 그래서 점심 시간, 회의 중, 잠깐 자리 비우기 전 AI에 작업을 지시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대화형 프롬프팅도 이야기를 나누듯 업무를 계속 이어가게 하는 이유라고 연구진은 짚었습니다.
여러 AI 에이전트를 병렬로 실행하면 ‘업무 파트너’가 있는 느낌 덕분에 추진력을 얻는 듯 하나, 실제로는 끊임없이 맥락 전환이 일어나는 셈입니다. AI가 만든 결과물을 수시로 확인하는 등의 맥락 전환은 생산성을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번아웃에 빠졌다거나 피로를 느낀다는 구성원들이 많습니다. 퀀텀워크플레이스 조사에 따르면, AI를 자주 사용하는 직원들의 절반 가까이(45%)가 스스로 번아웃에 빠졌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AI를 가끔 사용하는 직원(38%)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직원(35%)에 비해 더 높은 비율을 기록했습니다.(링크) 신체적, 정신적 탈진 상태인 번아웃까지는 아니더라도, 개인의 인지 능력을 넘어선 과도한 AI 도구 사용으로 인한 정신적 피로(AI brain fry)를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AI brain fry’는 의사결정 능력 저하, 오류 발생 빈도 증가, 퇴사 의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넘겨서는 안됩니다.
HR, 마케팅 다음으로 ‘AI brain fry’ 많이 느껴
특히 레터의 서두에서 언급한 ‘감독’ 역할이 AI 활용에서 정신적 부담을 가장 크게 느끼는 업무 형태입니다. AI 도구의 작동과 결과물을 직접 모니터링해야 하는 정도에 따라 정신적 피로가 커집니다. 높은 수준의 감독을 요구하는 업무에서 그렇지 않은 업무에 비해 정신적 피로를 느끼는 경우가 12%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업무에서 처리해야 하는 정보의 양에 압도 당하는 느낌도 19% 더 많이 느낍니다.(링크)
‘AI brain fry’ 경험은 직무별로 차이가 납니다. 마케팅(25.9%), HR(19.3%)은 AI로 인한 정신적 피로를 가장 많이 느끼는 직무로 드러났습니다. 개발, 재무 등이 그 뒤를 잇습니다. 차이를 가른 지점은 ‘AI 산출물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명확한가, 자신뿐 아니라 타인이 AI를 쓰도록 돕는 일을 포함하는가’입니다. 마케팅에 쓰이는 광고 카피나 소재 등 산출물은 품질에 대한 판단이 주관적이기 때문에 즉 ‘무엇이 좋은 결과물인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감독’의 부담이 커집니다.(링크) HR이 ‘AI brain fry’를 많이 겪는 이유도 정답이 없는 영역이 많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HR은 채용, 학습개발(L&D), 인사 운영 등 업무에 AI를 활용하는 것은 물론 전사 AI 도입의 책임도 지고 있지요. 반면 AI로 인한 정신적 피로를 가장 적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난 법무/컴플라이언스 직무는 정답이 명확하고 AI 사용을 제한된 범위에서만 허용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조직적으로 ‘틈’을 만들어야
연구자들은 AI를 사용하면서 정신적 피로를 느끼는 상태를 ‘조기 경보’라고 해석하며 개인이 해소하도록 두는 것이 아니라, 조직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업무량이 야금야금 늘어 의사결정의 품질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링크) ‘AI brain fry’ 개념을 정의한 연구에 참여한 줄리 베다드 보스턴컨설팅그룹(BCG) 파트너는 CBS 뉴스와 인터뷰에서 “AI는 저만치 앞서 가지만 사람은 어제와 같은 뇌를 갖고 있다”며 “AI를 통한 생산성 향상에 대한 기대치를 재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소소하지만 중요한 협업 규칙을 세운다
AI를 활용하는 협업 규칙은 의도적으로 ‘틈’을 만드는 것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반대 의견을 들어본다든지, 조직 목표와의 연관성을 제시하도록 요구한다든지 등의 장치를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링크) 정신적으로 피로한 상태에서는 코딩이나 서식 오류처럼 쉽게 발견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사소한 오류의 발생 빈도가 늘어나는 정도(11%)보다 중요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중대한 오류의 발생 빈도 증가율(39%)이 더 높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링크) AI와 사람이 동시에, 또는 여러 AI 에이전트가 동시에 작업을 진행하는 가운데 성찰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지요. AI가 생성하는 모든 결과물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다 긴급하지 않은 사항은 일괄 처리한다든지, AI와만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짧은 시간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기회를 마련하는 등의 규칙도 피로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팀 차원에서 업무 프로세스에 AI를 통합한다
개인이 아닌 팀 차원에서 반복적인 작업을 집단적으로 제거하고, AI 활용 능력을 공동의 역량으로 개발하면 인지적 부담이 줄어든다고 합니다.(링크) 또, 무엇을 성과지표로 삼는지도 물론 부담을 가중하기도, 완화하기도 합니다. 토큰사용량(링크)이나 AI로 생성한 코드가 몇 줄인지가 아니라, ‘AI를 왜 사용하는지’에 초점을 맞춰서 목표와 임팩트에 따라 성과를 측정해야 단순히 일을 늘리기만 하는 데서 오는 피로를 방지할 수 있겠지요. 리더는 팀의 업무에서 AI의 역할을 정의하고, 업무 범위를 재편함으로써 AI 활용에 대한 명확한 기대치를 설정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을 AI로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어떤 일을 AI로 할지를 팀 차원에서 정해보는 것이지요.
서베이를 통해 ‘인지 부하’를 감지한다
HR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구성원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입니다. 몰입도, 스트레스 수준 등을 점검하는 서베이에 몇 가지 질문을 더해 AI로 유발된 인지 부하(AI brain fry)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성원이 각자 사용하는 AI 도구는 몇 개인지, AI가 업무를 간소화하는지 아니면 업무량을 늘렸는지, 하루 일과를 마칠 때 어떤 기분인지 등을 물어봄으로써 정신적 피로를 점검하는 것이지요.(링크) 활용하는 AI 도구 수는 실제로 생산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1~2개의 도구를 활용할 때는 생산성을 크게 향상하나, 3개 이상이면 증가율이 낮아지고 4개 이상이면 생산성이 오히려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링크) AI가 가져온 진짜 도전은 ‘도구를 얼마나 많이 사용하고 빨리 익히느냐’가 아니라 ‘그 도구를 다루는 사람의 유한한 인지 자원을 어떻게 지키고 잘 쓰느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