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 전환의 늪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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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오전, 이른 아침부터 연달아 잡혀 있던 회의를 마치고, 급한 일들을 점심시간 전에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 돌아왔지만 막상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질 않습니다. 마음과 달리 업무에 빠르게 복귀하지 못하고 괜히 모니터 속 화면만 바라보고 있다보니 점심시간이 되었군요. 밥을 먹고 돌아와 일을 하나씩 처리하려는 찰나, 메신저와 메일함에 빨간 불이 뜹니다. 정말 급하게 나를 찾는 거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에 하던 일을 멈추고 답장을 한 뒤 관련한 일들을 처리하고 있자니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지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하루가 끝나버렸습니다. 오늘 하기로 결심했던 일들은 하나도 하지 못했네요 😢

하이커 님의 하루는 어떤가요?

이 사례와 비슷한 업무 시간을 보내셨다면, '맥락 전환'의 늪에 놓여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 업무를 추진하는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생산성을 높여주는 툴도 많아지는데 왜 우리는 일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여러 일들 사이를 방황하는 느낌이 자꾸 드는 걸까요? 이건 우리가 스스로도 모르게 너무 많은 맥락 전환을 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오늘 Lemonbase Camp Weekly(LbC Weekly)에서는 일하는 사람들의 생산성에 큰 위협이 되고 있는 '맥락 전환'이 정확히 무엇이고, 여기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러 업무와 연락에 치여 떠밀리듯 일하는 느낌이 든다면, 오늘 레터를 특히 주목해보세요 🙌

맥락 전환이란?

맥락 전환(Context Switching)은 '업무 과정 중에 여러 다른 종류나 형태의 업무들 사이를 오가며 수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회의를 마친 후 바로 다른 주제의 회의나 업무에 돌입하거나, 어떤 업무를 하다가 다른 업무와 관련된 이메일이나 메신저 연락을 받아 이에 대해 소통하게 되는 경우 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맥락 전환'으로 지칭된 데는 어떤 배경이 있을까요? 맥락 전환은 원래 컴퓨터의 다중 연산 처리 과정을 가리키는 기술 용어입니다. 컴퓨터에서 동시에 여러 작업을 수행하는 것을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이라고 하지요. 사용자가 작업 프로그램을 바꿀 때 컴퓨터는 기존 프로그램에서 다른 프로그램으로 처리 능력을 '전환'하고, 이전의 작업 내용은 단기적으로 기억장치에 '저장'해둡니다. 즉, 여러 일을 동시에 해내는 것이라 생각했던 멀티태스킹이 사실은 '맥락 전환을 요구하는 선형(linear) 작업'인 것입니다.(링크) 이때의 맥락 전환이 기억장치를 따로 가지고 있는 컴퓨터에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심지어 컴퓨터의 성능이 점차 높아지면서 이 속도는 더욱 빨라져 정말 '동시에 수행되는' 듯 보이지요.

하지만 사람은 이렇게 작동하는 기억장치를 가지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맥락 전환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합니다. 특히 여러 업무를 동시에 진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존에 하고 있던 업무를 '저장'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에너지를 매우 많이 소비합니다.(링크) 실제 수행이 아닌 저장에 에너지를 쓰고, 심지어 이 과정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된다면 우리는 쉽게 피로해지고, 금방 집중력을 잃게 되겠지요. 표면적으로 생산력을 올려줄 것으로 보이는 멀티태스킹은 사실 사람에게는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업무 수행 방식인 셈입니다.

맥락 전환은 생산성을 저하합니다, 분명히.

맥락 전환이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게 해 좀 지치더라도 멀티태스킹이 생산성을 높여준다면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잦은 맥락 전환이 생산성을 위협한다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이미 검증된 이야기입니다.

우선 심리학 개념 중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를 살펴볼까요. 완수하지 못한 일에 미련을 남기고 더 오래 기억하는 심리 기제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마치지 못한 일은 계속 우리의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 지속적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즉 하나의 일을 끝내지 못한 채 맥락 전환을 하게 되면, 옮긴 일에도 우리의 뇌를 온전히 쓰지 못하고 몰입에 실패하게 되는 것이지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지 자원을 다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곧 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는 것은 합당한 결론입니다. 컴퓨터과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제럴드 빈버그는 여러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면 생산성이 80% 수준으로 저하된다고 말합니다.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수행하면, 생산성의 20%는 맥락 전환을 위해 사용되기 때문에 각각의 업무에는 나의 최대 생산성의 40%씩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링크) 동시에 여러 작업을 수행하면, 각각의 작업에 쓰는 뇌의 능력 역시 저하됩니다. 연구에 따르면 작업 중 메시지, 이메일 확인 등 멀티태스킹을 수행한 사람들의 IQ 점수는 밤을 새거나 마리화나를 흡연한 경우와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집니다.(링크)

또 맥락 전환을 위해서는 저장을 위한 에너지 소비가 필수적이라고 앞서 언급했는데요, 이 저장된 내용을 다시 불러오기 위한 시간상의 '전환 비용(Switching Cost)'도 필요합니다.(링크) 연구 결과, 어떤 작업을 하다가 중단한 뒤 다른 일을 하고 돌아와 다시 시작하는 데는 평균적으로 23분가량 소요된다고 합니다.(링크) 만약 어떤 업무를 하던 중 도착한 다른 업무 관련 메일을 확인하는 데 5분을 썼다면, 원래 하던 일에 다시 몰입하는 데는 30분 정도가 소요되는 셈이지요. 맥락 전환에 시간을 쓰는 만큼 실제 업무에 몰입하는 시간은 줄어듭니다.

맥락 전환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맥락 전환이 생각보다 더 가깝고 더 위험한 것임을 알고 나서도 이런 의문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 회의 시간을 내 맘대로 짤 수도 없고, 업무 연락이 내가 원하는 시간에만 오게 할 수도 없는 것이니, 맥락 전환은 우리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이러한 상황이 문제라는 것을 어렴풋이 인지했더라도 막상 해결 방법을 찾거나 시도해보지 못한 적도 있으실 겁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생산성을 위협하는 맥락 전환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기에, 맥락 전환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여러 차원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나를 돕는 방법

실시간으로 무분별하게 들어오는 정보들은 어쩔 수 없이 개인이 일차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다만 이때 나에게 오는 모든 정보들이 '긴급'한 것이라고 인지하는 건 착각일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하세요. 사람의 뇌는 '새로운 것'을 좋아합니다. 여러 경로로 오는 새로운 알림은 뇌의 보상시스템(reward system)을 자극해 쾌락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을 생성합니다.(링크) 즉 우리는 새로운 정보에 접근하려고 하는 본질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욕구가 새로운 요청을 '더 중요하거나 긴급한 것'으로 인지하게 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이 착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요청과 정보들의 우선순위와 처리 방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선순위가 명확하지 않으면, 무엇을 먼저 할지 결정하는 것 자체가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작업은 매우 중요합니다.

새로운 정보와 업무의 우선순위를 파악할 때, 일의 중요도와 시급성을 축으로 해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아이젠하워 매트릭스(Eisenhower Matrix)'와 같은 우선순위 결정 방법론을 적용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링크) '이번 분기의 목표(OKR)와 연관된 업무'와 '일회성 단순 업무 부탁' 중 전자의 업무 중요도가 높을 가능성이 크겠지요. 다만 후자의 업무라도 시급성이 높다면 빠르게 처리해야 할 수도 있고요. 이러한 상황에서 업무의 중요도와 시급성을 따져 '지금 무엇을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이때 '지금 도착한 요청이 무조건 먼저 해치워야 하는 일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하나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단위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때 ‘타임블록(time block)’과 ‘뽀모도로(Pomodoro) 시간관리법’ 등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일의 종류나 주제에 따라 각각의 업무를 수행할 시간을 정해 ‘타임블록’으로 만들어두고, 해당 업무를 짧은 시간 단위(예를 들어, 25분 집중 후 5분 휴식)로 쪼개 ‘집중-휴식’의 루틴을 반복함으로써 자신의 업무 시간을 통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해당 타임블록의 집중 시간에는 다른 업무나 연락에 일절 반응하지 않고 하기로 한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지요. 이때 메일 확인, 메신저 일괄 응답 등의 일상적 반복 업무에 대해서도 타임블록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동료를 돕는 방법

앞서 언급했듯 맥락 전환은 ‘내가 하고 싶어서’보다도 ‘외부의 개입에 의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구성원 대부분이 맥락 전환의 고충을 겪고 있다면, 개인적인 노력만으로는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뜻이지요.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동료의 맥락 전환을 줄여주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업무 연락시에 이 업무나 논의가 동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비동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구분해 함께 알려주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디지털 기반의 업무 커뮤니케이션 툴들은 더 많은 실시간 소통을 유도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 급격히 확산한 2020년 2월 이후 자사의 화상회의 앱인 팀즈(Teams)를 통해 이루어진 주간 회의 시간이 252%, 회의 수는 153% 증가했다고 밝혔습니다. 메시징 앱 슬랙(Slack)을 사용하는 대기업 구성원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200개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고요.(링크) 그러나 이러한 실시간 소통은 개인의 업무 몰입을 저해하는 요인이 됩니다.

요청한 업무에 대해 즉각적인 응답이나 당장 동기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꼭 필요하지 않다면 비동기적 응답을 요청해보세요. 동료가 여유를 가지고 맥락을 전환해 새롭게 몰입한 뒤 해당 업무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 한다면, 더 많은 인지 자원을 충분히 사용해 결과를 내고 응답할 수 있게 돕는 셈이 됩니다. 이때 비동기적 응답을 요청한다면, 언제까지 응답해주어야 하는지도 명확하게 알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조직이 돕는 방법

구성원의 맥락 전환을 줄이기 위해 조직은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까요? 개별 구성원이 수행하는 맥락 전환의 빈도에 조직의 대응이 꽤 큰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CS, 영업 등 외부로부터의 연락에 상시 노출되는 부서라면 위에서 언급한 개인적 대응 방안을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지요. 조직은 이러한 구성원들의 생산성 저하와 부정적인 구성원 경험을 막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오늘 레터에서는 레몬베이스가 시행하고 있는 방법들을 예시로 간략히 소개합니다.

‘회의 없는 날’(No Meeting Day)

레몬베이스는 매주 수요일을 ‘회의 없는 날’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습니다.(링크) 많은 기업들이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기도 한데요, 수요일만큼은 새로운 논의 없이 진행하고 있는 업무들을 차분히 살피며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Customer Success 팀의 사례

레몬베이스의 고객이 제품을 더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레몬베이스 Customer Success 팀은 고객의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한 여러 일들을 수행하고 있는데요, 이 중에는 고객이 어려움을 느낄 때 주시는 문의에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업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내부 유관 부서와 소통하는 업무도 가중되고요. 고객의 문의와 그 시점을 팀이 미리 예측할 수 없다 보니, 다른 중요한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타임블록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곤 하지요. 이러한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낀 팀은 각각의 구성원이 고객 및 내부 유관 부서와의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하지 않는 날을 직접 정해, 이 날에는 그간 하지 못했던 업무를 몰입해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팀의 구성원 Rachel은 이러한 제도가 팀 전체의 업무 생산성 향상에 큰 도움이 되고 구성원 개개인의 스트레스도 덜어내는 효과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저 역시 업무 메신저에서 흥미로운 메시지를 따라가는, 소소한 맥락 전환을 경험했습니다. 우리의 업무 일상에 맥락 전환이 떼어놓기 어려울 만큼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방증이겠지요. 맥락 전환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업무가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도록 두지 않기로 결심하는 데 오늘의 레터가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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