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평가에서 'SBI 피드백'만 쓰면 안 되는 이유

[강정욱 칼럼] 고성과 리더의 플레이북 (1)
연말 평가는 사건을 넘어, 패턴을 다루는 일

평가 시즌이 되면 리더들은 늘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다. 머릿속에는 어느 정도 판단이 있지만, 그것을 글로 옮기는 순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해진다.

“성과는 좋은데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조금 더 성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는 시니어답게 더 넓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런 판단에는 오랜 시간 함께 일하며 쌓아온 관찰과 나름의 감각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코멘트로 옮기면 구성원 입장에서 무엇을 보고 그렇게 판단했는지, 앞으로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자칫하면 ‘내가 한 일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 자체가 평가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HR은 SBI 프레임워크와 같은 피드백 구조를 강조한다. 참고로 SBI란, 상황(situation), 행동(behavior), 영향(impact)의 약자로 특정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했고, 그 행동이 어떤 영향을 만들었는지 설명하는 방식이다. 구체적 사건에 대한 언급은 피드백에 대한 저항을 낮추고, 다음 행동을 명확하게 해준다.

지난 프로젝트에서 일정 변경 가능성이 있었지만 관련 팀에 미리 공유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디자인팀과 개발팀이 후반부에 일정을 급하게 조정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피드백 시,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하다”는 말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하지만 연말 평가에서 SBI만으로 충분할까? 그렇지 않다. 연말 평가는 특정 사건 하나가 아니라, 일정 기간 반복된 행동과 영향에 대한 종합적 판단이기 때문이다. 사건만 나열하면 구성원은 오히려 ‘그 일 하나로 나를 평가한 것인가?’라고 오해할 수 있다.

그렇기에 리더는 구체적인 사건을 언급하되 거기에 갇혀서는 안 된다. 반복되는 패턴을 읽고, 필요한 경우 앞으로의 역할이나 커리어 방향까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피드백을 사건, 패턴, 방향이라는 세 가지 층위로 설명하고자 한다.

사건: 피드백을 받아들이게 하는 출발점

사건 피드백은 SBI와 같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했고, 그 행동이 어떤 영향을 만들었는지를 다룬다. 관찰된 사건이 언급되지 않는 경우, 편향에 치우치기 쉽다. 또한 “책임감이 부족하다”, “협업이 아쉽다”는 말만으로는 구성원이 어떤 행동을 바꿔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예를 들어 일정 변경 가능성을 관련 팀에 늦게 공유했다면, 실제 있었던 상황과 행동, 부정적 영향을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다음에는 일정이 늦어지는 것을 인지하는 시점에 먼저 공유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이는 조직학습에서 말하는 단일 고리 학습이란 개념과 연결된다. 크리스 아지리스와 도널드 쇤은 ‘학습’을 기대한 결과와 실제 결과 사이의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그리고 행동을 직접적으로 고치는 것이 단일 고리 학습이다.1

‘다음에 무엇을 다르게 해야 하는가?’

사건 수준의 피드백은 수시 1:1 대화나 즉각적인 피드백에서 특히 유용하다. 다만 사건은 어디까지나 연말 평가의 중요한 판단 근거이지, 그 자체로 최종 판단이 될 수는 없다.

패턴: 연말 평가의 핵심 판단

연말 평가 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개별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패턴이다. 한 번의 실수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고, 반대로 한 번의 좋은 성과가 일하는 방식을 모두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리더가 해야 할 일은 주요 사건을 모아 ‘이 사람이 어떤 성과를 냈고,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가’를 해석하는 것이다.

앞의 사례를 이어서 살펴보자. 예를 들어 4월에는 일정 변경을 늦게 공유했고, 6월에는 의사결정 자료를 회의 직전에 준비했으며, 8월에는 관련 팀에 배경 맥락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사건만 나열하면 서로 다른 세 가지 실수처럼 보이지만 함께 놓고 보면 ‘정보를 충분히 정리한 뒤에야 공유하려는 경향’이라는 하나의 패턴이 드러날 수 있다.

이러한 패턴은 이중 고리 학습과 연결된다. 이중 고리 학습은 특정 행동을 수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행동을 만들어낸 목표, 가정, 기준을 검토하는 학습이다. 아지리스의 비유를 빌리면, 온도조절기가 정해진 온도에 맞춰 작동하는 것을 넘어 애초에 왜 그 온도로 설정했는지를 묻는 것과 같다.1

‘나는 어떤 기준과 가정으로 일하고 있으며, 그 기준은 지금도 유효한가?’

단순하게 공유 시점을 앞당기는 행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리더는 구성원과 함께 ‘정보는 완전히 정리한 뒤에 공유해야 한다’는 기준에 대해서 피드백하고, 1:1 면담에서 함께 논의해야 한다. 즉, 연말 평가는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패턴의 해석이자, 기준을 재정립하는 대화가 되어야 한다.

방향: 다음 역할에 대한 기대 얼라인

‘방향 수준의 피드백’은 연말 평가보다 역할 전환 시점이나 커리어에 대한 논의 시 중요하다. 예를 들어 승진을 앞두고 있거나, 시니어 또는 리더 역할을 기대하는 경우다. 이때 평가 피드백은 ‘지금까지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가’를 넘어,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까지 다뤄야 한다.

주니어에 대한 기대가 맡은 과제를 빠르고 안정적으로 완수하는 것이었다면, 시니어에게는 다른 기대가 생긴다. 본인 업무를 잘 하는 것을 넘어,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미리 판단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좋은 실행자에서 팀의 판단을 돕는 것으로 역할이 확장되는 것이다. 그 역할을 중심에 놓고, 지금 행동과 판단 기준을 교정하고 발전시킨다.

이러한 방식은 삼중 고리 학습과 연결해 볼 수 있다. 3중 고리 학습은 아지리스와 쇤이 직접 제시한 개념은 아니나, 이후 여러 연구자가 기존 고리 학습과 베이트슨의 학습 수준 이론을 확장하면서 발전시켰다.2 이 글에서는 행동과 판단 기준을 넘어 자신의 역할과 정체성을 정의하는 의미로 사용한다.

‘앞으로 나는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이어야 하는가?’

방향에 대한 피드백은 단순히 새로운 행동이나 판단 기준을 요구하는 일이 아니다. 앞으로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지, 어떤 영향력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해야 하는지, 그 정체성에 대해서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결국, 리더는 세 가지 층위를 오가야 한다

좋은 평가 피드백은 하나의 층위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건에만 머물면 사례 모음집이 되고, 방향만 말하면 “더 넓은 시야”, “리더다운 모습”과 같은 추상적인 표현만 남는다. 리더는 구성원의 맥락과 피드백의 목적에 따라 세 가지 층위를 오가야 한다. 이를 실제 평가 코멘트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이번 리뷰 기간 동안 반복적으로 확인된 개선점은 협업에 필요한 정보와 맥락을 더 일찍 공유하는 것입니다. 4월 프로젝트에서는 일정 변경 가능성이 관련 팀에 늦게 공유되었고, 6월에는 의사결정 자료가 회의 직전에 준비되었습니다. 8월 업무에서도 배경 맥락이 충분히 공유되지 않아 협업자들이 후속 작업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 사례들을 종합하면, 정보를 충분히 정리한 뒤에 공유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려는 의도는 이해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협업하는 팀들이 미리 대비하고 함께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앞으로는 불확실한 상태에서도 현재까지의 맥락과 리스크를 열어두고 동료가 함께 판단할 수 있도록 돕기를 기대합니다. 더불어, 시니어로서 본인의 실행을 안정적으로 완수하는 사람에서 팀의 판단을 돕는 사람으로 역할을 확장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자기객관화는 어렵다. 한 번의 실수는 상황 탓으로 돌리기 쉽지만, 여러 사건에 걸쳐 반복되는 행동은 본인보다 곁에서 지켜본 사람이 먼저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평가 피드백의 효과는 바로 이 지점에서 나타난다. 구성원이 혼자서는 보기 힘든 자신의 모습을 사건과 패턴을 통해 비춰주고, 필요하다면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까지 함께 그려보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리더가 해야 할 일이자,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영향력이다.


Footnote

1 Chris Argyris. (1977). Double Loop Learning in Organizations. Harvard Business Review.

2 Paul Tosey, Max Visser, Mark N. K. Saunders. (2012). The Origins and Conceptualizations of ‘Triple-loop’ Learning: A Critical Review. Management Learning.

💡
좋은 평가 피드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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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욱(jay@lemonbase.com)

강정욱(jay@lemonbase.com)

레몬베이스 People & Culture Team Lead로 일하고 있습니다. 시리즈 A부터 D까지 여러 스타트업에서 경험을 쌓았고, 개인과 조직이 함께 성장하는 문화를 만들고자 노력 중입니다.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리더들의 이야기를 쉬운 문장으로 전달하고 싶습니다. 저서로 <나의 첫 커리어 브랜딩>과 <스타트업 HR 팀장들>이 있습니다.